중학교 고등학교가 같이 있는 학교를 나왔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이들과 수다를 떨거나 체육시간이면 잠시 쉬기도 하는 장소인 운동장 쪽 가장자리 쪽에 시원한 쉼터가 있었는데 길쭉한 나무의자들이 10개 정도 나란히 있었다. 5월쯤이면 등나무의 탐스러운 보라색 꽃송이들이 그윽한 향기를 뿜으며 포도송이처럼 내려와 있다. 참으로 싱그러운 향기와 운치를 제공해 주는 나무이다.
등나무
등나무(rattan)는 추위, 염분, 공해에 강하고 성장 속도가 빠른 식물이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토양을 가리지 않고 자라지만 비옥하고 물기가 많은 토양에서 더 잘 자른다. 콩과 식물이라 척박한 민둥산이나 황폐한 땅에서도 왕성하게 자라는 편이고 꽃도 풍성하게 피어 꿀을 따는 양봉을 할 수 있는 밀원식물이다. 대신 꽃은 잎사귀가 어느 정도 있을 때 핀다. 가지치기나 자연재해 등으로 잎사귀가 없는 등나무는 꽃을 제치고 우선 잎부터 피운다. 등나무가 살기 위하여 양분을 만드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등나무 혹이 면역력을 높여주다
등나무의 정식 명칭은 '등'이고 더욱 정확히는 '참등'이라 한다. 등나무 전설 때문인지 팽나무에 감겨 있는 등나무 꽃을 말려 신혼 금침에 넣어주면 부부금실이 좋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요즘에도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이 나무의 잎을 따다가 삶아 그 물을 마시면 애정을 회복할 수 있다고 하여 등나무를 찾는다고 한다. 등나무의 새순을 등채라 하여 삶아서 나물로 무쳐먹고 꽃은 등화채라 하여 소금물에 술을 섞어 함께 버무려서 시루에 찐 후 식혀서 소금과 기름에 무쳐 먹으면 간식으로 좋다고 한다. 등나물은 변비에 좋고 맛이 약간 시고 찬 성질을 갖고 있어 열을 내리고 소장과 대장을 윤택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저처럼 손발이 차거나 몸이 찬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고 한다. 등나무 잎은 염료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 뿌리는 이뇨제,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 등나무 줄기는 단단해서 지팡이로도 사용하는데 조선 영조대왕에게도 이 등나무 지팡이가 있었다고 한다. 간혹 등나무 줄기에 혹 같은 것이 생기는데 이 혹은 등나무 독나방이 등나무 줄기 속에 낳은 알 때문에 생긴다. 등나무 독나방이 낳은 알의 독 때문에 등나무 줄기가 부풀어 올라 혹처럼 된단다. 등나무 독벌레의 알이 등나무 혹 속에서 부화되면 애벌레는 등나무 혹을 갉아먹으며 자란다. 등나무가 독과 싸우면서 만들어내 면역물질이 많이 들어있어 사람의 암에도 면역치료를 하는 것으로 추측되며 위암. 자궁암 치료에 쓰인다고 한다.
팽나무와 등나무에 서려있는 슬픈 전설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마을 초입에는 거대한 팽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여름에 무성한 그늘을 이루고 있다. 이 팽나무에는 네 그루의 등나무가 서로 뒤엉켜있다. 이 팽나무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신라 시대 어느 마을에 아름다운 두 자매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지난 추석 정월대보름 한가위를 맞아 말달리기 놀이를 하는 잘생긴 신라 화랑의 모습에 반해 두자매가 동시에 신랑화랑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 당시 신라는 주변 국가로부터 많은 위협이 있고 전쟁이 일어났다. 신라의 화랑과 청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전장으로 나가 싸워야만 했다. 배웅을 하는 중 두 자매는 한 남자를 사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자매는 서로의 사랑을 응원하기로 한다. 그러던 중 화랑의 전사 소식을 듣고 너무 슬픈 나머지 두 자매는 서로 부둥켜안고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만다. 그 후 연못가에는 두 그루가 한조가 되어 등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한편 죽은 줄로 알았던 화랑이 전장에서 돌아왔으나 두 자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그도 연못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 후 연못에 팽나무가 자라기 시작했고 등나무는 하나로 연결되어 팽나무를 휘감고 있다.
등나무에서 갈등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있다.팽나무와 등나무의 형태를 보고 나온 얘기인 거 같다. 갈등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대립과 모순으로 뒤엉켜버린 상황을 뜻한다. 갈등의 갈은 칡을 의미하고 등은 등나무를 의미한다. 칡은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고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간다.
두 나무가 함께 얽혀버리듯이 이해관계가 뒤엉켜버린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마치며
갈등에 대해 얘기를 해보려 한다. 밧줄놀이 강사를 하면서 갈등에 대해서 가끔 얘기를 한다. 이때 사용되는 매듭이 팔자 매듭이다. 긴 밧줄 하나의 끝을 팔자 매듭을 한다. 그리고 다른 한쪽의 끝을 팔자매듭 반대로 들어오게 한다. 그러면 절대 매듭이 풀어지지 않는 매듭이 된다. 스토리는 '혼자 사는 게 팔자려니 하고 사는데 내 인생 어딘가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내 팔자에 들어오면서 시댁도 만나고 남의 편인 남편도 만나고 아들 낳고 딸 낳고 살다 보니 팽나무와 등나무처럼 엃혀버렸다. 너무 꼬여버린 내 삶을 어떻게 끊어낼 것인가.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주제로 다뤘다. 매듭을 풀지 못하고 가위로 잘라버리면 꼬인 것을 풀지를 못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게 된다. 그러니 꼬인 것을 매듭을 풀려면 반대로 하나하나 잘 풀어버리려고 무수한 노력을 해야 한다. 부모와 학우와의 갈등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적용을 시켜서 수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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